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 적 있었다
감물 든 서쪽 하늘 물러지는 초저녁
새들이 다녀가는 동안 버스가 지나갔다.
다 식은 지붕 아래 어둠 덥석 물고 온
말랑한 고양이에게 무릎 한 쪽 내어주고
간간이 떨어진 별과 안부도 주고받지.
누구의 위로일까 담장 위 편지 한 통
'시청복지과' 주소가 찍힌 고딕체 감정처럼
어쩌면 그대도 나도 빈집으로 섰느니.
직설적인 말투는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는
그대는 기다림의 자세, 가을이라 적는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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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1967~)성산읍 시흥리 출신
2004년 제주시조지상백일장 당선
2006년「제주작가」신인상, 2008년「시조21」신인상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빈 곳이 도드라져가는 때다. 특히 명절 앞둔 즈음이면 빈집이 더 길게 눈에 밟힌다. 돌보지
않는 무덤 같은 빈집들. 아직은 벌초 행렬이 도로를 메우지만 여기저기 무너져가는 빈집들
의 기다림도 한동안의 일일 뿐이다.
'새들이 다녀가는 동안 버스가 지나'가도 기척 하나 없는 집. '감물 든 서쪽 하늘 물러지는
초저녁'이면 희미한 기다림조차 쇠해졌겠다. '편지 한 통'이 그나마 '복지' 같은 잠시의 '위로
'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하긴 지속적인 위로란 없으니 빈집은 '기다림의 자세'로 삭아갈 수
밖에 없겠다. 부서질라, 가을바람도 그 곁으로는 발을 들고 지나겠지만.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