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같이 흔들리던 긴 발목을 접는다
가을은, 어쩌면 가을은 제 몸 하나 거두는 것
눈 감아야만 하늘을 우러를 수 있다면
끝끝내 실눈마저 하얗게 덮으시던
가을은, 어쩌면 가을은 아버지의 마음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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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1969~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장원 (04)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눈길을
걷다'가 당선돼 등단 시조집 '달빛을 동이다'
한국문협,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
초록숲 동인으로 활동 중 현대자동차(주) 근무
어느새 '방아깨비'도 '긴 발목을 접는' 때가 되었나 보다. 정강이 맑게 비치는 방아깨비 유의
곤충들은 아무래도 풀의 권속 같다. 그렇다면 가을 풀처럼 말라가며 함께 생(生)을 접을 수
밖에 없겠다. 그렇게 발목 접는 곤충들 옆으로 가을 냄새도 짙어간다. 가을! 하고 들판을 걸
으면 논배미마다 다르게 그려내는 무늬와 색깔들로 황홀하기 짝이 없다. 연두 머금은 노란
빛의 선명한 벼 물결 앞에 목이 멜 정도다.
그런 금빛 물결 속에는 아버지의 시간이 있다. 어머니의 시간도 물론 들어 있지만 논에는 어
쩐지 아버지의 굽은 등이 깊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기계화 이전에는 삽으로 진흙의 시간을
넘어온 아버지들. 가을빛 고슬고슬 익어가는 날, 들판에서 깊은 주름들을 다시 본다. '아버지
의 마음 같은' 멋진 가을을 지어내신 분들께도 새삼 고개 숙인다. 올가을도 무엇을 거둘지 곰
곰 돌아보며.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