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 ◆박영교◆
1
삼천리 그 몇 천리를 세월 그 몇 굽이 돌아
갈고 서린 한을 풀어 가을 하늘을 돌고 있네.
수수한 울음 하나로 한평생을 돌고 있네.
2
아홉 마당 열두 타작으로 잔등을 후려쳐라.
주름살 골을 따라 갈가리 찢긴 한을
한평생 돌다 지치면 내 전신을 두들겨라.
3
울거라 울거라 밤새도록 울거라 너는,
한 세상 끝날까지 닿도록 울거라 너는,
낙동강 홍수가 되어 범람토록 울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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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교=(1943~ ) 봉화 출생
중앙대 사범대학,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
197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조집 ‘가을寓話’, ‘사랑이 슬픔에게’,
‘겨울허수아비’, ‘숯을 굽는 마음’, ‘창(槍)’, ‘징’, ‘우리의 인연들이
잠들고 있을 즈음’, ‘춤’과 평론집 ‘文學과 良心의 소리’, ‘詩와
讀者사이’, ‘시조 작법과 시적내용의 모호성’이 있다.
제1회 중앙시조 대상(신인부문), 민족시가 대상(제4회),
경상북도 문학상(제1회), 경상북도 문화상(제42회)등을 수상
징보다 깊은 울림이 있을까. 방짜 징은 그중 깊고 맑은 울림으로 이름이 높다. 에밀레종만
할까 싶겠지만, 좋은 징은 시푸른 하늘이나 깊디깊은 우물처럼 유장한 맛이 있다. 그렇게
가을 하늘이 커다란 징 같은 날은 한번 울려보고 싶다. 얼마나 길고 깊은 여운으로 번질까.
우리네 '삼천리 그 몇 천리를 세월 그 몇 굽이'를 돌아온 징. 한과 노래를 실어 온 때문인지
징소리에는 때때로 구렁이 울음이며 비원(悲願)의 춤사위 같은 게 비친다. 그렇게 '밤새도
록' 울어 타 들어가는 가슴들 좀 적시고 '갈고 서린 한'도 죄 풀어주면 좋겠다. 가을도 '열두
타작' 가을로 넉넉히 거둘 수 있기를, 징소리 앞세워 빌어보는 너무 마른 가을이다.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