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
◆엄미경◆
내 작은 시 그대의 위로가 되었으면
어깨를 눕히는 가을 깊은 산 아래
말갛게 울리는 물방울
소리로 다가간다면
숲 속은 한순간에 낙엽으로 무너지고
밤나무 긴 가지로 길처럼 뻗은 나날
반가운 편지를 보낼까
망설이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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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경=(1964~ )강원도 영월 출생.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나무에서 빠져 나오다》 외 다수.
정운엽시조문학상 수상. ‘끌’동인.
책과 더불어 등불을 댕기는 가을은 지난날 얘기다. 산과 들의 찬란한 잔치판에 여러 축제
까지 보태니 독서는커녕 진득하게 들앉기도 어렵다. 와중에 오랜만의 시집 베스트셀러 소
식이 반갑다. 대중에 대한 노골적 호소가 아닌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이라 더 각별하다. 시
읽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가 싶겠지만 도처의 독자들 반응을 만나보면 시 사랑은 여전하다.
그렇게 '내 작은 시'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으면'…. '말갛게 울리는 물방울' 운율로 그대
의 '어깨를 눕히는' 가을을 그려본다. 단풍처럼 물들어 시 속으로 무너진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 '편지를 보낼까' 망설임 딛고 가는 시집 편지가 더 반갑겠다. 쓸모없음으로 쓸
모를 깨우는 시라니, 세상 앞에 서면 더 '작은' 시집으로 초대해도 귀히 받겠다. 연애편지며
주머니 속에서 귀 닳던 시집들의 한때가 불현듯 젖어드는 가을도 한가운데….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