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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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1962~ )충북 중원에서 출생.
1989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성선설〉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이 있고,
산문집은 『눈물은 왜 짠가』(이레)등이 있음.
함민복 시인은 제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참 가난하게 살았네요.충북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
어나 공업고등학고를 졸업했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취직해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서울예
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해서 시를 공부하고,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시는 “만학”을
하던 대학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죠?
함민복 시인의 시 중 가장 잘 알려진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를 읽으면서도 눈물이 났는
데, 이 시도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눈물은 왜 짠가>에서는 가난하게 사는 자식에
게 설렁탕 국물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시인 어머님의 사랑이 짠하게 다가와서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는데, 이 시에서는 형님의 동생 사랑이 가슴을 아프게 하네요.
동생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전세방에서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가난한 형님. 요즘 세
상에서는 보기 드문 형제애죠. 어쩌면 그런 어머니와 형님이 있었기 때문에 청빈하게 살았
던 함민복 시인의 많은 시들이 <긍정적인 밥>에서처럼 따뜻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
다.
이 시에 나오는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의 모습도 짠하면서도 아름답죠? 아직 엄마 곁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칭얼대는 어린 아이가 점심 장사 시간에 맞춰 자 주는 것이 고마워서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가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지네요.
아직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젊은 부부를 보면서 시인은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
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엇다고 하네요. 여
기서도 우리 시인이 참 착한 분이란 걸 알 수 있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남기는 게 미안해서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마지
막 면발까지 다 먹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제 배가 “더부룩하게” 불러오죠. 그래서
이 시를 읽고 나면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참, 숙취에 자
장면이라니… 이 조합도 슬프게 하는 것들 중 하나죠?
2015-1121--D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