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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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1966~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며 등단
시집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
7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
산문집 『반통의 물』이 있고, 옮긴 그림책으로 『조각이불』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들이 나와서 동요를 부르는 방송인데 잘
불러서 예쁘고, 가끔 잘 못 불러도 예쁘다. 얼마나 예쁜지 저 눈빛 저 표정대로만 살아주면,
혹은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다만 소망인 이유는, 어른의
세계는 ‘누가 누가 강하나’ 이런 타이틀을 단 프로그램 같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고 강하게 살아야 ‘잘’ 사는 세상이라니까 물러 터지고 주저하는 사람들은 ‘잘’
살기가 참 난감하다. 쉽게 잊기보다는 자꾸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고, 짐을 버리기보다 짊어
지는 습성이 남아 있다면 ‘잘’ 못 살고 있는 것인가 헷갈리기도 한다. 난감하여 손을 만지작
거리고, 헷갈려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바치고 싶은 시가 있다.
둘 곳 없는 손을 잡아주는 대신, 쑥스러운 머리를 토닥이는 대신 다정하게 읽어주고 싶은
시가 있다.
‘산속에서’라는 시에는 나그네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나그네는 낭만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
는 피곤하고 외로운 떠돌이, 가고 있지만 갈 곳이 없으며 가야 하지만 갈 수 없는 마음이다.
시인도 한때 그런 마음으로 한참 헤맨 경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헤맨 끝에 그는 구원을
찾았다. 나그네의 지친 다리를 구원해 준 것은 ‘먼 곳의 불빛’이었다. ‘불빛’이 너를 안아 줄
거야, 나도 그랬으니 한번 믿어 봐. 이 시는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보지 못했던 불빛이 보이는 듯하고, 보지 못했던 불빛이 되고도 싶다. 누
군가는 그것을 이상향, 가치, 덕목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
까지 갈 것도 없다. 불빛은 마음이고 사람이다. 너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 등불, 나를 기다릴
너의 마음 등불, 이런 등불이 내일의 타이틀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나민애 평론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