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김규동◆
기다리겠어요
목숨이야 있고 없고 기다리죠
하얀 다리에서
산굽이 돌아가는 까만 점이
안보일 때까지
치맛자락 걷어 올려
눈물 닦으시던 분
그 분을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넋이야 있고 없고
해와 달을 의지해서라도 기다리겠어요
날아갑니다
휴전선을
흰 나비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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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1925∼2011) 함북 종성 출생
1947년 연변의과대학 수료 1948년 평양종합대학교 중퇴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옴
1951년~53년 후반기 동인으로 모더니즘 시 운동 전개
1955년 첫 시집<나비와 광장>이후 <현대의 신화>, <죽음 속의 영웅>,
<깨끗한 희망>, <오늘도 기러기떼는>, <느릅나무에게>등의 시집
1962년 <지성과 고독의 문학>, <지폐와 피아노>,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 <어머님 전상서>, <시인의 빈손> 外
자유문인협회상, 은관문화훈장, 만해문학상 수상
김규동 시인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의 대표작 ‘나비와 광장’을 떠올린다. 더 나아간
다면 함북에서 출생한 수재이며, 또한 김기림을 시 선생으로 모신 문단의 기린아였다는 점
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는 문명과 전쟁을 날카롭게 비판한 시인이었고, 그만큼 지적인
인물이었다.
그랬다. 김규동 시인의 사진을 보면 안경을 쓴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편으로 그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었다. 어머니를 몹시 그
리워하는 한 명의 아들이기도 했다.
시인은 함북 경성에서 출생해 자랐지만 1948년 이후 고향에 가지 못했다. 북에 있는 동생
과 어머니를 만날 수도 없었다. 가족에 대한 기억과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인은 점차
나이를 먹어갔다. 그 애타는 속사정이야 우리는 정확히 알 길이 없고 다만 이 작품을 통해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짐작만으로도 마음이 묵직해진다. 김규동 시인은 2011년 5∼6월에 이 작품을 발표하고 그
해 9월에 작고했다. 그러니 작품을 쓸 때 그는 몹시 아팠을 것이다. 아프니까 몸도 마음도
흐릿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선명하게 비친 것은 어머니였다.
아니, 그래서 어머니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이 시를 쓸 때 시인은 이미 할아버지였고, 할
아버지가 된 사람에게 모친이 생존해 계신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도 시인이 어머니를 사
무치게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제대로 어머니를 잃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헤어지지 못
했는데 헤어졌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24세 청년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헤어질 때
그 상태로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기다리시니 돌아가야 옳다. 목숨이 있건 없건,
넋이 있건 없건 어머니에게 돌아가리라는 시의 표현이 참 사무친다. 실향의 마음은 이런 것
이다.
나민애 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