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일어섰을까, 방파제 끝에
빈 소주병 하나,
번데기 담긴 종이컵 하나 놓고 돌아갔다.
나는 해풍 정면에, 익명 위에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정확하게
자네 앉았던 자릴 거다. 이 친구,
병째 꺾었군. 이맛살 주름 잡으며 펴며
부우- 부우-
빠져나가는 바다,
바다 이홉, 내가 받아 부는 병나발에도
뱃고동 소리가 풀린다.
나도 울면 우는 소리가 난다.
--------------------------------------------------------------
▶문인수=(1945~ )경북 성주에서 출생
1985년 『심상』 신인상에 「능수버들」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적막 소리』, 『그립다는 말의 긴 팔』, 동시집 『염소 똥은 똥그랗다』
미당문학상, 대구문학상,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금복문학상 등을 수상
정현종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 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 홉들이 빈 소주병이 있다. 방파제 끝에서 누군가는 왜 소주를 “병째 꺾”
었을까. 시 속의 화자가 그 익명의 누군가를 “자네” “이 친구”라고 호명하는 순간,
두 주체는 같은 서사(敍事)를 공유하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둘을 엮어주는 소주는 “주름”
가득한 인생의 쓰디쓴 시니피앙이다. 당신은 울고 있는가. “나도 울면 우는 소리가 난다.” 사
랑은 때로 보이지 않는 사람과도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