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앉지 마라 말씀하신 아버지가
명퇴 후 습관처럼 모서리에 앉아계신다
가운데 앉으세요 해도 고개만 저으신다
키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가장(家長) 자리에서 가장자리된 아픈 이름
한사코 가운데자리 앉혔다 눈시울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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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정=(1973~) 2012년 《유심》 등단.
전태일문학상 수상.
자리로 사람값 매기는 게 세상의 인심이다. 무슨 행사마다 의전에 예민한 것도 자리가 곧 위
상인 때문이다.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등 위치에 따라 그 표상이며 속내도 사뭇 복잡하다.
'측근'이라는 오랫동안 득세해온 자리도 '최측근'에서 다시 '친(親)'이니 '진(眞)'으로 회자되
며 자릿값을 깨우쳐준다. 그런 당락이야 먼 데 일로 넘긴다지만, 아버지의 '명퇴'는 주변에 그
늘을 드리울 우리 집안의 일이다.
'가장(家長) 자리에서 가장자리된 아픈 이름'들. 그렇듯 퇴직은 '키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작아
지'는 일이다. '명퇴'라지만 물러앉음 자체가 명예롭지 못한 이후를 만들기 때문이다. 내려오
는 자리가 있으면 올라가는 자리도 있을진대, 연말 탓인지 퇴직의 그림자들이 더 길게 쓸쓸
하 다. 그래도 '가운데자리 앉'히고 싶은 이 땅 아버지들의 오랜 수고 덕에 또다시 꽃피는 봄
은 올 것이다.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