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일
◆이용상◆
서울로 태국으로
아들 손자 다 떠나
고향 달빛 몇 사발로
제사상을 차렸네
나 혼자 제관이 되어
고즈넉이 절을 하네
오십 년 그 세월도
난 한 촉 피는 사이
상 차리던 당신이
영혼으로 다녀간 밤
내 집에 자정의 만찬
설거지하고 가겠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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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1934~2015)제주도 북제주군에서 출생
1976년 ‘현대시학’과 ‘시조문학’을 통해 시와 시로조 등단
시집으로 ‘섬은 가장 외로울 때 동백을 피운다’와
‘감나무 그 긴 가지’가 있다. 제주시조문학회장,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장을 역임했고, 1992년 제10회 한국시조문학상과
1994년 제주도문화상, 2003년 시조시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
깨끗한 마감은 모두의 소망이다. 특히 생의 마감은 잠자듯 하고 싶다고들 되뇐다. 목욕 후
옷 다 갈아입고 잠에 들더니 그대로 떠나는 구순(九旬)의 맑은 복도 봤다. 얼마 전까지 '고
향 달빛 몇 사발로' 아내의 '제사상을 차'리던 노시인도 순간이동처럼 고요히 저세상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생전에 '상 차리던 당신이/ 영혼으로 다녀간 밤'이면 '당신'은 또 얼마나 간절히 불렀을까.
그런데 '오십 년 그 세월도/ 난 한 촉 피는 사이'라니! 그동안 '혼자 제관이 되어/ 고즈넉이
절을 하'던 노시인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리. 긴 그리움의 해후에는 난도 오래 피려니 오붓
이 누리시길….
하지만 시인과 벗하던 '고향 달빛'은 한참씩 쓸쓸하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올해 '자정의
만찬/ 설거지'는 어느 때보다 환히 하고 가겠네. 제기(祭器)라도 씻듯 달빛이 더 푸르게 부
서지는 한겨울밤에.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