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음악-머무는 바 없는 빈마음
雪 山
◆조영일◆
능선 너머에서 넘어오는 바람이 차다
아무도 다가서지 못하는 날개 펼치고
은빛의 차디찬 한낮 빙벽으로 서 있다
푸른 결기 음각한 팻말을 둘러치고
한파 속 흰 뼈마디 드러낸 준엄한 적요
절필의 막막함이여, 백지(白紙) 펄럭인다
----------------------------------------------------------------
▶조영일=(1944~ )안동시 송천동 솔뫼리 출생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및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바람 길》《솔뫼리 사람들》《마른 강》《시간의 무늬》등
이호우시조문학상,경북문학상,경북문화상,등《시조21》편집위원,
이육사문학관 관장,한국시조시인협회 수석부회장,경북문인협회장
한파는 차가운 고요를 데려온다. 추위가 셀수록 단단해지는 고요 속. 눈이라도 쌓이면 '아무
도 다가서지 못하는 날개'를 펴듯 산들도 한층 준엄해진다. 한낮마저 '은빛의 차디찬' '빙벽'
을 둘러치니 인내의 심금을 재듯 깊어지는 나날이다.
그 너머에서 더 '준엄한 적요'로 빛나는 설산. 범접 못 할 세계의 비의(秘儀)인 양 높이 솟은
설산은 그래서 더 푸른 매혹이다. '신의 영역'이라면서도 인간의 발로 아니 온몸으로 굳이 오
르는 사람들은 그 미답(未踏)에 혼이 팔린 것일까. 영화 '히말라야'의 관객들도 생을 걸어야
만 잠시 서본다는 설산의 높디높은 고독에 더 매료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산은 '절필의 막막함'과도 닮았다. '백지(白紙)'만 준엄하게 펄럭이는! 새해도 그런
백지 위에 새로 쓰는 기분으로 삼가며 마주한다. 새로 써나갈 새 약속들을 음각하듯 숙이며
또 적어본다.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