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손기섭-
언제부턴가 내 등에
점점 커가는 콩알만 한 혹 하나가 생겼는데
손이 닿지 않아 만질 수도 없고
거울로 비쳐봐도 잘 보이지도 않고
가끔 가려운 듯하면서 신경을 긁는다
손수 칼 잡을 때 같으면
친구 이리 와 그까짓 것 문제없어
하고 손쉽게 떼어내 줄 것 같은 것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렇게 해줄 만한 친구 하나 없다
나온 지 오래 됐어도 근무했던 병원에 가면
마음 써줄 후배나 제자도 있겠지만
그 까다로운 수속이며 절차며
어쩔 수 없이 번호가 되어 기다려야 하고
그 밖의 처지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번지도 잘 모르는 곳에서 눈물이 난다
-------------------------------------------------------------
▶손기섭(孫基燮)=1928년 경남 사천 출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졸업(의학박사)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현신’, ‘고개 위에서’,
‘나를 찾아서’, ‘안개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서’등 출간
한성기문학상, 대전시문화상(학술부문), 세계황금왕관시인상 등 수상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의과대학 학장, 부속병원장 등 역임
충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
시인은 직업이 되지 못한다. 원고료를 가지고는 먹고살 수 없다. 물론 받기는 하지만 원고료
는 몹시 적고 대개는 돈 말고 시가 실린 잡지로 받으려고 한다. 시인들도 잡지사 형편이 어렵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개의 시인은 별개의 생업을 가지고 있다. 아니, 계
속 시인이고 싶어서 직장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손기섭 시인의 경우에도 직업은 따로 있다. 그는 의사다. 의사 중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외
과의사이고, 아주 큰 대학병원 원장을 하던 분이다. 한때 ‘메스의 신’으로 날렸다. 그리고 그
는, 메스만 잡은 것이 아니라 펜도 함께 잡았다. 회진이다 수술이다 엄청나게 바빴을 텐데도
시인이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바쁜 짬을 쪼개 시의 자리를 마련했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
표했다. 게다가 어렵고 가난한 시인들이 아프면 열일 제쳐 놓고 치료해 주시던 분이기도 하
다.
그랬던 시인 의사는 나이를 먹었고 이제 퇴직하여 외로이 지낸다. 그런데 등에 혹이 하나 자
라기 시작했단다. 예전 같으면 그까짓 게 무슨 대수랴. 쉽게 떼어줄 친구며 동료가 허다하게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근무하던 병원에 가도 번호표를 뽑아든 노인이
되어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과거 가장 반짝거렸던 장소에서 가장 초라하게 앉아 있으려니
목이 멜 수밖에.
공원에, 벤치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모든 노인들은 한때 역전의 용사였고 푸른 젊은이였고
훌륭했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것이 왜 슬퍼야 할까. 그들은 아름다웠기에 이미 아
름답다. 그러니 “열심히 시를 쓰고 열심히 생명을 구해 주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줄 필요
가 있다. 저 노인의 손을 꼭 잡아줄 필요가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