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굴 부근
◈김광규◈
타이가 산 중턱에 올라와
이발소 풍경화처럼 눈에 띄는 남청색
물빛을 내려다봅니다 해발 1천 5백 미터
고원에 고여 있는 시간의 색깔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루에 몇 번씩
천천히 바뀝니다
야생화 만발한 산록 초원에서 온종일
풀을 뜯는 양 떼들
측백나무 숲 위를 떠도는 솔개들
침엽수림 뒤덮으며 소리 없이 퍼지는 안개가
때로는 모든 경계를 지워버리기도 하지요
홉스굴 호수와 짙푸른 원시림
90일 비자로 입국한 관광객들에게
자연은 국경이 없다고 가르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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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金光圭(1941~ )서울 출생) 1975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반달곰에게》,《아니다 그렇지 않다》,
《크낙산의 마음》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한양대학교 독문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홉스굴 호수는 몽골의 북쪽 타이가 삼림지대에 있고 바다처럼 넓
고 깊고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시에서도 그러한 인상은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이곳에서
의 시간은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연(天然)의 그것으로 매우 느리게 완만한 속도로 흘러다.
방목되는 양 떼들은 풀을 뜯는 일을 방해받지 않고 충분히 즐긴다. 솔개 또한 솔개 본연의
일을 그의 의지대로 한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니라 멋진 풍광이 또 하나 있다. 침엽수림에 하얀 면사포를 씌운 듯 내려
앉은 안개는 경계를 지워버린다. 자연은 모든 국경을 지워버린다. 그렇다. 애초에 자연이 스
스로를 구획한 적은 없다. 언덕과 들판은, 광활한 대지는 그냥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