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아가씨-박재홍
40계단 오르막길
◈진홍청◈
미색코트 입은 숏컷머리 낯선 여성
앞서거니 뒤서거니 곯려주며 걷던 출근길
목이 긴 기린이 되지않을까 둥둥 쪽지 띄우고
중앙동 거상 찻집에서 물망초
눈빛을 담았다.
겨울밤 둘이서 발자국 새긴 해운대 모래밭길
눈 오는 날 경주도 눈이 내린다며 기뻐하던 낭랑한 목소리
장갑 낀 손을 잡히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토함산길
무더운 밤 막차 끊긴 삼십 리 찾아갔던 시골길
광복동 인파 속에서 빛나던 잔잔한 미소
향기로운 선물 수정도장 내 품에
안겨진 채
서울 한복판 겨울도 아닌 여름날
찬 기운 가르며 떠나고
세월은 종이배 되어 먼발치에서 생존 고리를 염려하며
서로 다른 인생을 바라보고 있다.
부산 40계단 오르막길
칠순의 발걸음 앞에 잡힐 듯
숏컷머리 여인이 앞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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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청=1943년생.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 중등학교 교사.
〈시작노트〉
인연이란 무지개보다 아름다운 것. 이립의 나이에 단신 부산 머물던 시절 40계단 동광동
오르막길에서 일생 가슴에 안고 사는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겨울 바다처럼 차가운 내 가
슴에 봄날 경주 남산길 햇살 온기로 나를 감싸주었다. 그리움은 겹겹이 돌계단이 되었다.
부산, 40계단 오르막길, 나에게는 그리움의 계단이다.
kookje.co.kr/201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