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1. 08:10ㆍ″``°☆아름다운詩/◈詩가깃든삶
Blue Autumn - Claude Choe 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노란감국화가한무더기헤죽,헤죽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 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돈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 ▶문태준=(1970∼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95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處署〉외 9편이 당선 되어 등단. 시집『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그늘의 발 달』등이 있음. 제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 10월이 되면 이 시가 꼭 첫머리로 떠오른다. 10월과 문태준 시인의 조합은 지극히 옳은 만 남이라고 생각된다. 시인은 비어 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비어 있으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인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말이 좀 어렵지만 진짜 그렇다. 비어 있음 안에는 비어 있음의 쓸쓸함과 풍경과 느낌들이 들 어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런 비어 있음과 채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좋은 만큼 지극히 쓸쓸한 것은 그의 시를 읽을 때 함께 담아야 하는 덤이다. 10월은 텅 비어가는 시절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우리는 덜어내고, 비워내고, 털어내야 할 때 가 오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풍성함은 더욱 감사하고, 사그라드는 것은 더욱 애잔하다. 그것을 이 시인은 어쩜 이렇게 딱 그려냈을까. 시인은 시든 오이나 꽃빛처럼, 10월의 운명에 처한 상실의 대상들을 잘 포착하고 있다. 뭔가 다 사라지고 있구나, 이런 상실을 너무나 잘 깨닫는 이유는 이미 상실을 너무나 잘 경 험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에 와서 혼자서 찬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고 썼다. 반찬 없는 것 도 속상한데 온기도, 식구도, 사랑도 없다. 아무리 ‘혼밥’ ‘혼술’이 대세라지만 시월은 원래가 쓸쓸한 계절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혼자 는 더 쓸쓸하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10월은 역시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6-10-07
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노란감국화가한무더기헤죽,헤죽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 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돈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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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1970∼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95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處署〉외 9편이 당선
되어 등단. 시집『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그늘의 발
달』등이 있음. 제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
10월이 되면 이 시가 꼭 첫머리로 떠오른다. 10월과 문태준 시인의 조합은 지극히 옳은 만
남이라고 생각된다. 시인은 비어 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비어 있으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인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말이 좀 어렵지만 진짜 그렇다. 비어 있음 안에는 비어 있음의 쓸쓸함과 풍경과 느낌들이 들
어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런 비어 있음과 채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좋은
만큼 지극히 쓸쓸한 것은 그의 시를 읽을 때 함께 담아야 하는 덤이다.
10월은 텅 비어가는 시절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우리는 덜어내고, 비워내고, 털어내야 할 때
가 오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풍성함은 더욱 감사하고, 사그라드는 것은 더욱 애잔하다.
그것을 이 시인은 어쩜 이렇게 딱 그려냈을까. 시인은 시든 오이나 꽃빛처럼, 10월의 운명에
처한 상실의 대상들을 잘 포착하고 있다.
뭔가 다 사라지고 있구나, 이런 상실을 너무나 잘 깨닫는 이유는 이미 상실을 너무나 잘 경
험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에 와서 혼자서 찬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고 썼다. 반찬 없는 것
도 속상한데 온기도, 식구도, 사랑도 없다.
아무리 ‘혼밥’ ‘혼술’이 대세라지만 시월은 원래가 쓸쓸한 계절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혼자
는 더 쓸쓸하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10월은 역시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