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마른다
◈신달자◈
붉은 고추 널어놓은
옆집 한옥 마당에
나도 누워 뒹굴면
온몸 배어나는 설움 마를까
그러려무나
물기 완전 날아가고
빈 젖 같은
마른 씨 안고 있는 화형 직전의 고추같이
바다를 제 몸 안으로 거둬들였음에도
바짝 마른 멸치같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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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1943~ )경남 거창 출생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
《여상》신인여류문학상(1964),《현대문학》으로 등단(1972)
시집『봉헌문자』,『열애』등 10여권 산문집『백치애인』,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외 다수 한국불교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시와시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수상
붉은 고추가 한옥 마당에서 마르고 있다. 아마도 '앞니만 한 뜰'에서였을 것이다. 물기가 다
날아가서 없어지고 있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처럼 가을이 마르고 있다. 가을 햇살에 하나
의 풍경도 마르고 있다. 우리 모두도 마른다. 수척해진다. 구르는 낙엽처럼 종일 뒤척인다.
형체가 왜소해진다. 비워진다. 그리하여 무념(無念)에 이르러도 좋을 일이다.
신달자 시인은 시 '계동 가을'에서 '구절초// 한 잎 같은// 방에 누워// 그 꽃잎만 한 이불로//
11도의 서늘함을 가리고// 그 꽃잎 하나 같은// 내일을 생각하다'라고 썼다. 가을에는 실로
우리도 구절초 한 잎 같다. 한 잎처럼 작아져 한 가닥 바람에 홀로 흔들린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