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심장
◈신석정◈
별도
하늘도
밤도
치웁다
얼어붙은 심장 밑으로 흐르던
한 줄기 가는 어느 난류가 멈추고
지치도록 고요한 하늘에 별도 얼어붙어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정지하고
푸른 별이 모조리 떨어질지라도
그래도 서러울 리 없다는 너는
오 너는 아직 고운 심장을 지녔거니
밤이 이대로 억만 년이라 갈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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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1907∼1974)(辛錫正)전라북도 부안군 동중리 출생
1927년 『기우는 해』로 문단에 데뷔 1931년 10월 『시문학詩
文學』3호에 「선물」 발표 시집 「촛불」 「슬픈목가」「빙하」
「산의 서곡」「대바람 소리」1958년 전라북도문화상, 1968년
한국문학상, 1973년 제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첫 연, 저 구절에 눈이 딱 멈춘다. 멈춘 시선은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별도, 하늘도,
밤도 춥다니, 오늘날의 마음을 정확히 읊어 놓은 것만 같다. 첫 연, 저 구절에 눈이 딱 멈
춘다면 지금 당신은 추운 거다. 이 시를 읽으면서 추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 당신은
바로 추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거다.
요맘때는 으레 춥기 마련이지만 올해 11월은 유독 춥다. 그 이유는 마음이 춥기 때문이다.
그래, 추운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추워서, 혹은 추우니까 내내 춥기만 하고 있을 테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 시를 읽을 수 있다. 이 시는 추운 오늘과 춥지 않은 내일을 말하고
있다.
신석정은 1907년에 태어나 1970년대까지를 살았다. 그러니 가장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었을 때 그는 나라를 뺏기고 찢기는 일을 경험해야 했다.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공부하
고 시를 쓰는 점잖은 사람이었지만 흔들림이 없었겠는가.
그에게도 엎어지고 고꾸라지고 황망하고 억울한 날이 많았다. 이른바 ‘얼어붙은 심장’의
나날이 많았다. 얼어붙은 심장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 시에 잘 나와 있다. 그것은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멈추고 푸른 별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절망 속에 시인은 내일을 위한 하나의 목소리를 숨겨 놓았다. 그 목소리
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춥고 어두워도 서럽지 않다. 얼어붙은 심장이 아니라 여전히 고
운 심장을 신뢰하므로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밤은 억만 년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는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비록 지금은 별도 하늘도 밤도 춥지만 이 추위의 밤은 영원
하지 않을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6-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