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 경
◈김제현◈
뎅그렁 바람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 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만등(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無上)의 별빛.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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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현(1939∼ )전남 장흥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수료(문학박사)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대문학』천료 등단
△정운시조문학상, 홍조근정훈장 수상
△경기대학교 교수 및 교육대학원장 역임
△경남문인협회 회장 역임
△경남시조문학회, 마산문인협회 회장
△《시조시학》발행인
△시집『동토』, 『산번지』, 『잊었던 사람에게』
이 작품은 시조다. 시조 하면 대개 딱딱한 형식을 연상하지만 이 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
히려 유연하고 자연스러워 편안하게 읽힌다. 게다가 참 좋다. 그저 따라 읽기만 했는데도 맑
고 청량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맑은 이유는 이 시가 산속 절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공기가 맑은 곳, 정신이 맑아지는 곳에 시가 있으니 맑을 수밖에 없다. 청량한 이유는 이 시
가 언어로 적혀 있지만 언어가 없는 세계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제현 시인은 시에서 탁한
것을 몇 번이고 여과해서 기존의 생각과 이미지를 정화하고 있다.
시의 처음, 우리는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만나게 된다. 풍경은 분명 종의 일종이지만 사
실 그것은 일종의 소리에 가깝다. ‘뎅그렁’ 울리면 비로소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풍경을 바
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풍경을 만나, 과감히 그것을 지운다. 사람들이 듣는 것은 다만 소리일 뿐, 안
에 담겨 있는 적막의 의미까지는 모른다. 정말 봐야 할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듣는
사람의 마음이다. 정말 들어야 할 것은 풍경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퍼지는 전체의 분위기와
느낌이다.
고요한 산속에서 바람 따라 울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 몹시 오묘하고 색다르다. 조금 과장하
자면 세상의 잡음과 다른, 자연스러운 깨달음의 소리라고 할까.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한참
앉아 있으면 지금까지 집착하던 욕망들이 참 헛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느낌과 마음을 시인은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의 별빛’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무상이란, 그 위에 뭘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뜻이다. 별빛만 무상일까. 이 시도
무상의 작품이다. 그 위에 무엇을 더할 수 없이, 맑고도 좋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