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집을 보다⊙
봄날, 집을 보다
배밭에 바람 흔적이 있다
가지에 푸른빛이 돈다
흙바닥에 푸른 기가 있다
이런 날은 시를 읽어도 소용없다
햇살이 하늘뿐 아니라
이 몸통이나, 나무와 바윗덩이와
길을 투과하고 있다
없는 씨앗에서도
싹이 돋겠다
아내도
햇살 핑계로
누굴 만나러 나간 오후다
두 산등성이가 내려와 맞닿는 곳에서
먼 산이 가깝다
깊은 산에 노루가 개처럼 짖겠다
―장철문(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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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봄'이라고 한 이유를 봄이 되면 알게 되지요.
대지의 모든 것이, 하늘의 모든 것이 눈[目]을 부릅니다.
산색이며 뜰의 기운이 하루하루 다릅니다. '시를 읽어도 소용없'습니다.
시가 그러할진대 다른 어떤 글이 이 기운생동을 이기겠어요.
나무들, 아직은 겨울의 모습 그대로 고요해도 내부의 살림살이는 잔치를
준비하듯 분주할 겁니다. 싹을, 꽃을 올려야 하거든요. '햇살'은 쨍쨍하기가
꽹과리 소리죠. '이 몸통' '나무나 바윗덩이'마저도 흔들어댑니다.
'없는 씨앗'마저 틔울 기세죠. 산과 산 사이의 '먼 산'도 가까이 가까이
걸어옵니다. 그래서 '봄'이죠.
'집을 보다'라는 말뜻은 '집을 지킨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습니다.
틀렸습니다. 여기의 '집'은 평당 얼마가 올랐네, 내렸네 하는 그 집이 아닙니다.
우주지요. 집 우(宇), 집 주(宙)이렇게 외웠듯이. 화창한 하루 '집을 보'러
저이의 아내처럼 집을 좀 나가야겠습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