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주 쓸쓸하다
◇박은정◇
오후에는 지하상가 계단에 앉아
스피커에서 나오는 유행가를 들었다
저녁의 한가운데
모르는 대문 앞에 머물다
저녁보다 먼저 저문 마음을 두고 왔다
몇 년 만에 눈이 내렸다
장갑을 버리고 귀를 막으면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 괜찮았다
언 담벼락을 돌아가는 개가 있다
몸이 찬 사람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개가 얼어 죽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다
-박은정 作 <오후와 저녁> 중
.............................................................................................................................................
쓸쓸해질 때면 이상하게도 세상 모든 소소하고 여린 것들에게
연민이 생긴다. 쓸쓸한 그 순간, 나 역시 소소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어느 도시 변두리 풍경이 음표처럼 흘러간다.
사는 건 별반 대단하지 않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자주 쓸쓸하고, 자주 소심하고, 자주 뭔가를
그리워하는 존재다.
시인은 쓸쓸한 오후와 저녁을 그려냈다. 아주 느리게 연주되는
멋진 피아노 독주를 듣는 기분이다.
시인은 얼어 죽어가는 개를 데려다 키웠을지도 모른다.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시가 있는 월요일]
http://blog.daum.net/kdm2141/659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