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비(紙碑) ◇이상◇
내키는 커서 다리는 길고 왼다리 아프고
안해 키는 작아서 다리는 짧고 바른 다리가 아프니
내 바른 다리와 안해 왼 다리와 성한 다리 끼리 한 사람처럼
걸어 가면 아아이 夫婦는 부축할 수 없는 절름 발이가 되어 버린다
無事한 世上이 病院이고 꼭 治療를 기다리는 無病이 끝끝내 있다.
―이상(1910~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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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집
막히면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흐르던 물도 큰 바위를 만나면 부딪고는 뒤돌아보던걸요. 어려서 읽던 책들을 뽑아 들 때가 많습니다. 벌써 표지 앞뒤로는 낱장으로 떨어져 나오는 낡은 책들입니다. '이상(李箱)'을 뽑아 들 때의 심사는 좀 각별합니다. '날고 싶은 심사', 그것이 '추락'임을 알면서도 '비상(혹은 도망)'하고 싶은 심사라고나 할까요? 풍선 같은 발랄과 지층의 돌덩이 같은 컴컴한 지성이 낱 실로 묶여 있는 것이 이상 문학의 이미지입니다.
이 시의 제목은 단도직입으로 그것을 보여주지요. 풀면, '종이로 된(세운) 비석'입니다. '돌비석'에 대한 야유이기도 할 테고 '종이 비석' (경전·經典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허망감이라고 해도 될 듯합니다.
'성한 다리끼리 묶어서 서로 도우며 갑시다…' 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법적 으로 부부가 되는) 삶입니다만 모두가 '부축할 수 없는 절름발이'가 되어버리는 것이 이치입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맹랑한 서양식 분류어를 '좌각' '우각'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더 재밌습니다. '치료(治療)를 기다리는 無病(병 없음)' 이 가장 무섭습니다. '믿음'이라고도 불리는 '맹목증'이지요. 서촌 '이상의 집'이나 오랜만에 둘러봐야겠습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http://blog.daum.net/kdm2141/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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