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못 / 이동호
바람이 뜰 안을 걷는다 닫힌 연못의 귀가 열리는 시간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수면이 반응한다
수면 위의 저 무수한 나이테들
한 그루 나무였을, 연못의 전생을 본다
조금씩 흔들리는 연못은 내가 사랑하는 관음이거나
안부조차 물어오지 않는 보살이어서
나는 수면이 그리워져 연못가에 한참을 서 있다
새벽 무렵의 연꽃은 차를 달이기에 좋다
절 주지는 이른 아침을 깨워 파란 연못을 몇 장 판다
연못이 다기茶器 속에서 끓는 사이
다기 밖으로는 모락모락 햇살이 오른다
바람이 묻자 연못은 또 수면 위에 제 나이를 밝힌다
연못 주위로 어린 나무들이 공손하게 서 있다
주지의 이미가 수면처럼 쓸쓸히 늙어가는 동안
김이 오르는 연못 속에서도 찻물이 끓는다
주체하기 힘든 이 연못의 향기는 뜨겁고
나는 눈밑 연꽃들을 더욱 붉게하는 저 향기들을
아직 다 비우지 못했다
주지가 권하는 연꽃향 가득한 찻잔이 적멸보궁 아닌가
나는 뜨거운 연못 한 잔, 단숨에 다 비우고
얼른 빈 찻잔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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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조용한 가족', 제7회 부산작가상 수상.
〈시작노트〉 새벽 무렵의 연못은 경전처럼 위대하다. 연잎과 연꽃의 함축적 의미는 평온함이니 그 위대하여 적막한 말씀들에 귀기울이다 보면 당신의 삶도 수면처럼 잔잔해질 것이다. kookje.co.kr2013-06-02 19: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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