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란 -고경숙-
한옥대문을 밀면
어머니는 툇마루 근처에서
빨래를 개키시거나
수돗가에서 채소를 씻곤 했었다
돌아앉은 빨간 블라우스 자락이
물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시집 '달의 뒤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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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숙=1961년 서울 출생.
2001년 '시현실' 등단.
시집 '모텔 캘리포니아' 등.
목단에서 우리말로 바뀐 모란, 모란은 부귀와 아름다움의 대명사다. 시인은
다 성장해서 어머니가 되어 어머니의 모습 하나하나가 모란이었음을 본다. 넓은
마당과 수돗가가 있는 한옥대문을 꽃잎을 열듯 민다. 어머니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각에 일상의 사소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같은 여자이며 시인인 화자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사소한 일상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는 모란이다. 꽃불이 화르르 번진다. 기적처럼 나를 키우고 세상을
키우던 것이 매 순간 반복되는 어머니의 단순한 일상과 얌전한 세간이었던 것,
그 속에 눈부시게 화려한 세상 답안이 숨어있다. '빨간 블라우스자락'이 모란이듯,
알 수 없는 깊은 향기 같은.
권정일·시인 kook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