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이해완-
귀뚜라미여,
잠시
울음을
그쳐다오
시방
하느님께서
바늘귀를
꿰시는 중이다
보름달
커다란 복판을
질러가는
기
러
기
떼

----------------------------------------------------------

▶이해완=(1962~ )
1990년에 샘터 시조상을 1992년에
겨레시조 신인상을 수상
1995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잠시 머무는 지상》 《수묵담채》
입동 지나며 영하로 떨어졌어도 음력으로는 아직 시월. 시월은 상달이다. 추수 후
마을에서는 소를 잡고 돼지를 삶으며 감사의 제를 올리곤 했다. 집집도 가을 고사를
정성껏 지내고 시루떡을 돌렸다. 그때마다 달빛이 휘영청, 능선을 넘어가는 철새들의
울음소리를 고샅에 시리게 떨구곤 했다. 가랑잎을 쓸고 가는 바람 속에 부엉이 울음이
꽤 으스스했지만, 개울 건너 외딴집까지 고사떡을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월 보름 하늘을 건너가는 기러기 떼가 있다. 올려다보는 우리도 오금 저린
길인데, 그들은 보름달 속에 그림을 그리며 유유히 건너간다. 그런데 그때는 귀뚜라미
조차 울음을 그쳐야 한다. '하느님께서/바늘귀를/꿰시는 중'이니 말이다. 땀땀이
박음질하듯 날아가는, 그것도 '보름달/커다란 복판을/질러가는' 기러기 떼의 순간!
우주가 배경인 절묘한 수묵화 한 폭이다. 그쯤이면 지상의 불도 다 꺼야 하리. 특히
시월 상달 보름에는. 오직 기러기 울음 묻은 달빛만 만천하에 출렁이도록!
정수자.시조시인
Chosun.com-2013.11.14 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