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길상호-
물끄러미 라는 말
한 꾸러미 너희들 딱딱한 입처럼
아무 소리도 없는 말
마른 지느러미처럼
어떤 방향으로도 몸을 틀 수 없는 말
그물에 걸리는 순간
물에서 끄집어낸 순간
덕장의 장대에 걸려서도
물끄러미,
겨울바람 비늘 파고들면
내장도 빼버린
뱃속 허기가 조금 느껴지는 말
아가미를 꿰고 있는 새끼줄 때문에
너를 두고 바다로 되돌아간 그림자 때문에
보아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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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1973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그 노인이 지은 집〉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 『눈의 심장을 받았네』가 있음. 2004년 현대시동인상, 천상병 시상, 김달진 젊은시인상 등 수상.
‘물끄러미’는 원래 ‘바라보다’라는 동사와 함께 쓰이는 부사이다. 그 뜻과 소리에 전혀 악의가 내포되지 않은 순우리말인데,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서 있는 한국인이 드물기 때문이다. 오천만 인구 가운데 영유아만 빼놓고는 모두 눈을 부릅뜨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화면 아니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머지않아 ‘물끄러미’를 ‘꾸러미’와 ‘지느러미’의 합성어쯤으로 생각하는 후손들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덕장의 장대에 걸려 건조되고 있는 명태의 눈에서 시인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마땅한 명사와 동사가 없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부사의 의미를 시인의 눈이 새롭게 발견한다.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6.07
http://blog.daum.net/kdm2141/4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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