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정의홍-
세월이 허리에 걸려 구부정하게 등 굽은 할머니 키보다 더 큰 폐지 묶음을 끌고 건널목을 건너는데
빨간 신호로 바뀐 지 오래건만 아직 반도 못 건넜다 위태위태하다
일 킬로에 백 사십 원 십 킬로에 천 사백 원 시장 안 강화식당 된장백반은 오천 원 저녁 밥 값은 벌었는지
커다란 폐지 묶음에 끌려가는 할머니 오늘 하루 해 떨어지는 것이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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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홍=(1956~ )1956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시집 『천국아파트』. 2011년 《시와 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 '홀로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하였을'을 발간한 바 있다.
2003년 이후 서울에 개원하여 수술과 환자를 보는 틈틈이
시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 동네 폐지도 이 할머니가 걷어간다. 등 굽은 할머니가 낡은 운동화를 신고 폐지 더미를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은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다. 신문지나 종이 상자를 십 킬로 수집해 보았자 천사백 원이니, 된장백반은 고사하고 라면 사먹기도 힘들겠다.
그런데 이 폐지 수집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아껴 모은 돈 일억 원을 어느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다음부터 이런 할머니 곁을 지날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두 손을 모은다. 성자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6.05
http://blog.daum.net/kdm2141/4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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