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몰래
곰삭은 젓갈 같은
시나 한 수 지었으면
짭짤하고 쌉싸름한
황석어나 멸치 젓갈
노여움 몰래
가시도 삭아 내린
시나 한 수 지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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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194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70)
△숭문고 국어교사로 35년 봉직
△한국작가회의 고문(이사장 역임)
△김수영문학상, 불교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수상
△시집『답청(踏靑)』,『저문 강에 삽을 씻고』,『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외 다수
어렸을 때 마포나루로 새우젓을 사러 갔었다. 6월에 담은 육젓이 가장 비쌌다.
중배가 홀쭉하고 갸름한 새우젓 독을 삯지게꾼이 집으로 져다 주었다. 김치 광
한 귀퉁이에서 곰삭은 젓갈은 늘 맛있는 밥반찬이 되었다.
김치 담글 때나 계란뚝배기를 찔 때도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였다. 젓갈을
담그는 데 필요불가결한 것은 소금과 시간이다. 곰삭은 젓갈 같은 시를 지으려면
그러므로 너무 싱겁거나 짜지 않고 “짭짤하고 쌉싸름한” 맛이 나도록 적당량의
소금이 들어가야 한다.
소금은 성경에도 나오는 상징 아닌가. 한 편의 시로 성숙하기 위하여 첨삭과
수정을 되풀이하면서 신중한 퇴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슬픔과 노여움도 곰삭
으면 서정적 변용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