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잘 숨었는지 얼굴 한 조각 보이지 않는다
장갑에 긴 팔 셔츠 긴 바지를 입고
흰 운동화까지 신었다
여름 한낮, 벗을 수 있는 마지막까지 다 벗고
온 몸을 드러낸 피서객들 틈을 햇빛 한 점
닿지 말라고 꽁꽁 싸매고 걸어간다
얼굴과 몸을 철저히 가리지 않았으면
그가 지나가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가 피라미드로 향하는 동안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못 알아보게 철저히 가린
미라가 모두에게 들켰다
숨긴 것은 들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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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경북상주 출생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시작 노트〉
오사마 빈 라덴이 잡혔을 때, 결정적 단서는 그의 거처에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가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쓰레기를 외부로 배출하지 않고
내부에서 소각한 것이, 오히려 외부의 의심을 불러일으켜 파국을 앞당겼다.
숨기고 싶으면 드러내고, 드러내고 싶으면 숨겨라! 삶의 진리는 반대편에 있는지도.
kookje.co.kr/201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