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구나 (…)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
▶최승자=(1952~ )충청남도 연기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독문과 졸업.
계간 《문학과 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즐거운 일기』『기억의 집』『내 무덤, 푸르고 』
『이 시대의 사랑』『즐거운 일기』등
옮긴책『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
스물아홉의 겨울, 청량리역에서 무작정 열차를 타고 겨울바다를 향했던 적이 있다. 작은
가방에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라는 책이 들어 있었는데, 당시 내가 느꼈던
삼십 세에 대한 무게를 덜어주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열차가 바다에 도착했을 즈음,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바다 위에 흩어지는 눈송이들이
지나온 나의 이십대처럼 느껴졌었다. 봄이 되면 저 바닷물이 흘러 나의 이십대를 서른의,
마흔의 해변으로 데려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차장 밖을 내다보던 기억들. 마흔을 앞두
고는 어땠을까. 스물아홉의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앞날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보다는 믿음이 더 컸지만, 믿음이라는 가방 속에는 제 발등을
찍을 수밖에 없는 도끼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날마다 발등을 찍히더
라도, 믿는 도끼를 들고 찍힌 발등으로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는 나이가 마흔이 아닐까.
<황병승·시인>
joins.com/201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