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를 더 주세요
◎김이듬◎
엄마가 떠날 때 내가 엄마를 불렀을 때 그녀는 트렁크를 들고 현관문을 여는 찰나였다
이 층 계단에서 나는 뛰어내려왔다 넘어졌다 몇 계단을 구르고 보니 동네 도랑가에 있었다 내 이마에는 그때 생긴 흉터가 있다
웃기지 마라 트라우마는 없다 비상구다 평소에는 앞머리로 커튼처럼 가리고 다니지만 기분 좋은 날엔 향기로운 동양란처럼 생긴 흉터를 밀고 내 마음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엄마는 히아신스를 만지고 있다 그녀는 외국 물건을 좋아했다 우리는 같이 파랑새를 부르고 장미과자를 먹고 들장미 덤불을 손질한다
비 오는 밤 죽은 엄마가 내 이마를 쓰다듬고 내 이마로 잠입하는 순간 나는 신열이 나서 몽환적인 자장가를 듣는다
―신작시집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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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1969~)경남 진주 출생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수상 Segye.com/201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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