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봉지 뜯어내면 별빛같이 시린 알약
떠나간 시간들을 물그릇에 받아들면
허공이 뿌리 내리고 낮달처럼 뜨는 얼굴
풀벌레 울음소리 은하 따라 흘러간 뒤
빈 화실 맑은 기운 붓대 타고 뻗어내려
한 사람 그늘진 삶을 진액 찍어 밝힌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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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송=경남 고성 출생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조집으로 <겨울 달빛 속에는>
<제철공장에 핀 장미는><안테나를 세우고> 등
평론집<우리시의 현주소>작품집 '응시' 등.
〈시작 노트〉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 여름, 서 화백은 사랑하는 사람을 요양병원에 보내놓고
우울증이 심해져 약으로 버텨갔다. 화실에 틀어박혀 젊은 날의 아내를 그리기 시작
했고,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 아내의 미소를 완성했다.
그림을 걸고 난 후 부인을 퇴원시키라는 전갈을 받았다고 한다. 가을도 무르익었으
니 정원에서 와인 한잔하자는 밝은 전화를 받았다.
kookje.co.kr/201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