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의 역사
◇이창기◇
겨울이 오면 이 땅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한두 번쯤 아침 밥상을 차리다 말고 무슨 액땜이라도 하는 양, "야, 밤새 눈이 하얗게 쌓였네" 하고 들릴락말락하게 내뱉는다.
그릇 부딪는 소리, 얌전한 도마 소리에 취해 두툼한 솜이불 한 귀퉁이씩 붙들고 늦잠을 즐기던 아이들은 무엇엔가 홀린 듯 단잠을 훌훌 벗어던지고 내복 바람으로 성에 낀 창가에 매달려 그 맑고 찬란한 겨울 아침을 맞곤 했다는데,
이런 거짓말의 풍습은 밤새 눈 내린 춥고 컴컴한 첫새벽에 삶은 눌은밥 한사발 들이켜고 홀로 먼 길 떠난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이 눈물겨운 족속의 오랜 전통이라고.
------------------------------------------------------------
▶이창기=1959년 서울에서 출생. 198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李生이 담 안을 엿보다’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등 그밖에 『스무살의 수사학』,
세상이 참 눈부시게 순백으로 빛나는 겨울 아침의 풍경이 여기에 있다. 방학을 맞은 아
이들은 솜이불을 끌어당기며 게으른 늦잠을 즐기고 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아침
밥상을 한창 차리고 있다. 일정하고 단정한 도마질 소리와 그릇 부시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로 밤새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허옇게 서릿발이 얼어붙은 창가에 매달려 바깥을, 집 밖을 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창가로 불러 모으는 어머니의 이런 거짓말은 참으로 뜻이
깊다. 추운 한데에 있는 것들을 보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눈물겨운 삶들을 보라는 말씀
이기 때문이다. 눌은밥을 들이켜고 홀로 길 나서는 사람들이 이 겨울 아침엔들 왜 없겠는가.
문태준 시인 |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01.02
http://blog.daum.net/kdm2141/52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