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나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숲은 검고 짐승의 울음 뜨거웠다.
마을은 불빛 한 점 내비치지 않았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몸을 뒤틀며 나무를 밀어댔지만,
세상 모르고 잠들었던 새
떨어져내려 어쩔 줄 몰라 퍼드득인다.
발등에 깃털이 떨어진다.
오, 놀라워라.
보드랍고 따뜻해.
가여워라. 내가 그랬구나.
어서 다시 잠들거라.
착한 아기.
나는 나를 나무에 묶어 놓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지 않으련다.
작은 새 놀란 숨소리 가라앉는 것 지키며
나도 그만 잠들고 싶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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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1955~ )1990년 계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단 한 사람』『세워진 사람』 등이 있다
제4회 일연문학상과 제2회 서정시학작품상을 수상
‘비전’은 훌륭한 시인 대부분이 치르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지만 대가의 경우에도
성공작이 드문데, 이 작품은 더 희귀하게 신비의 안온에 달하고 있다. 그 모든,
묶였다 풀려나는 신비가 ‘세상에서 가장 큰 눈을 한 공포’ ‘강물도 목을 죄던 어둠’
‘허옇고 허옇다던 절망’에 다가서기 위한 것이었다는 반전에서 그 안온이 경악으로
심화한다. 마구 떨리는 새 가슴처럼.
<김정환·시인>
joins.com/201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