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남자 시코쿠
◇황병승◇
하늘의 뜨거운 꼭지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 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 쓴다 꼬리 잘린 도마뱀은 찢고 또 쓴다
그대가 욕조에 누워있다면 그 욕조는 분명 눈부시다 그대가 사과를 먹고 있다면 나는 사과를 질투할 것이며 나는 그대의 찬 손에 쥐어진 칼 기꺼이 그대의 심장을 망칠 것이다
열두 살, 그때 이미 나는 남성을 찢고 나온 위대한 여성 미래를 점치기 위해 쥐의 습성을 지닌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 날마다 보내던 연애편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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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1970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3년 《파라21》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주치의 〉 외 5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여장남자 시코쿠』『트랙과 들판의 별』가 있음.
간략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훌륭한 ‘실패의 미학’ 입문. 도마뱀은 쓸 수 없는 손으로 쓸 수 없는 것을 쓰려 한다. 그 노력이 꼬리 잘린 도마뱀을 여장 남자 시코쿠로 만들지만, 예술의 불가능한 궁극은 성(性)의 극복이다. 이 뒤로, 도마뱀은 쓰지 않고 뛰지만 ‘숲 속의 손은 편지를 받아 들고/꼬리는 그것을 읽’고, 시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렬한 거짓’을 말할 밖에 없다.
<김정환·시인> joins.com/2015.01.06
http://blog.daum.net/kdm2141/5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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