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예년에 비해
풍년이 들어 많이 따게 되었습니다.
아까부터 우리 아버지께서는
정자나무 아래 등의자에 기대인 채
연밥 따는 아들 모습을 쳐다보고만 계셨습니다.
몇 십년간 떳떳하게 맡아 해 오셨던 일을
송두리째 넘겨주시고 손을 놨기 때문에
서운함을 느꼈던 때문일까요.
샘물은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듯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물림은
언제까지나 식지 않으며 뼈붙이로만,
뼈붙이로만 이어져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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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덕환=(1937∼ )1937年 忠南 論山에서 출생
圓光高等學校 및 圓光大學校 敎學大學院을 修了하였음.
1954年 文敎部主催 全國學生白日場大會에서 중학교
3학년생으로 참가 차상입상. 계刊 ‘文學과 意識’에서 制定한
新人文學賞에 태풍 外 12편의 詩로 當選되어 作品活動을 시작
2006年 大韓民國 文學살리기 運動本部 제12회 桂冠詩人賞을 수상.
詩集으로는 '우체통 위에도 눈이 내렸다' '감나무 베어지는 날' 등
......이하생략
연밥 농사가 풍년이라니 연꽃도 장관이었겠다. 호수처럼 너른 연못일 테다. 활짝 펼쳐진
푸른 치마 같은 연잎 사이로 ‘쪽배를 요기조기 띄워가며 연밥을 따’는 목가적인 풍경이 눈
에 선하다. 하지만 8월 한여름 땡볕 아래서 울창한 연잎과 줄기를 헤치고 노를 저으며, 쪽
배가 묵직해지도록 연밥을 따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노동일 테다.
화자는 어느 결에 ‘채련요(採蓮謠)’를 흥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연밥
따는 저 처자야/연밥줄밥 내 따 줄게/이내 품에 잠자다오/잠자기는 어렵잖소/연밥 따기 늦
어지오’, 화자 아버지도 익히 아실 그 가락.
‘아까부터 우리 아버지께서는/정자나무 아래 등의자에 기대인 채 연밥 따는 아들 모습을
쳐다보고만 계셨’단다. 당신의 땅에서 평안하게, 당신이 ‘몇 십년간 떳떳하게 맡아 해 오
셨던’ 일을 이어받은 아들을 지켜보는 지복이여. 그런데 화자는 어쩐지 죄송스럽다.
일선에서 물러난 아버지의 쓸쓸함과 서운함을 알 것 같은 것이다. 아버지를 위로하려 화자
는 외치고 싶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예요! 아버지와 나 사이는 ‘언제까지나 식지 않으며 뼈
붙이로만, 뼈붙이로만 이어져가는 겁니다!’ 왜 뼈붙이일까? 노동의 뼈? ‘뼈대 있는 집안’의
그 뼈? 아버지와 아들, 남자의 대물림은 아무래도 피보다 뼈인가 보다.
노에 닿는 물의 결, 쪽배의 흔들림, 연잎 사이에 숨어 있는 탐스러운 연밥을 비틀어 따는 감
촉,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구수하고도 풋풋하고도 비린 냄새, 그 하나하나를 아버지는 아들
의 몸으로 되사실 테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361>
dongA.com/201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