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엔 다른 바다들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어부의 바다,
항해자들의 바다,
수병들의 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기를 원하는 이들의 바다 등
나는 이런 바다들을 나열하는 사전이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건 우리 둘에 관해서지
내가 바다를 말할 때면
그건 언제나 카르낙에 있는 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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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젠느 기유빅=(1907~97 프.Eugene Guillevic)은 단순축약법의 거장이다
브르타뉴 지방은 거센 바람과 히이드가 물결치는, 몹시 척박한 땅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을 ‘대지에 바다가 스며드는 성스러운 장소’로 여겼으며
처녀시집 『테라케』의 원천 역시 유년시절을 보낸 브르타뉴에 연유했다고 한다.
그곳은 기유빅에게 생래적 통찰력과 감수성을 움트게 한 원초적 출발지였던 것이다.
'terraque'는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을 내포한 개념. 여기 옮긴 「두 개의 빈 병」은 『테
라케』에 수록된 “사물들”-17편 중 하나다. 기유빅은 퐁주ponge와 마찬가지로 그 무렵
문단의 주조였던 초현실주의의 현란함을 뒤로 돌리며 일상성과 구체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사물의 시’의 시대를 새로이 열고자 했다.
카르낙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소읍으로 바다와 면한 곳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선원
이고, 어머니는 양재사였다. 거센 바람과 히드 꽃이 물결치는 땅에서 나고 자라서 알사스
지방 등기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한다.
카르낙의 바다는 위험하고,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바다가 있지만 기유빅
에게 바다는 오직 카르낙의 바다뿐이다. 그 바다가 잔잔하다가도 불쑥 패악을 부릴 때 천
지간은 공포로 물든다. 이 바다는 우리 무의식의 바다와 조응(照應)한다. 사람은 저마다
바다를 하나씩 끌어안고 산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