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벽 처음으로
◇조 은◇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불안하게 눈을 뜨던 여느 때와 달랐다
내 마음이 어둠 속에 죽순처럼 솟아 있었다 머리맡엔 종이와 펜 지난밤 먹으려다 잊은 맑은 미역국
어둠을 더듬느라 지문 남긴 안경과 다시는 안 입을 것처럼 개켜 놓은 옷
방전된 전화기 내 방으로 밀려온 그림자 창 밖 그림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밤새 눌려 있던 머리카락이 부풀고 까슬까슬하던 혀가 촉촉했다 흰 종이에다 떨며 썼다
어느 새벽 처음으로…… 이렇게 깨끗한 첫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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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1960~ )경북 안동에서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 <햇볕 따뜻한 집>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벼랑에서 살다>,<조용한 열정>등이 있다.
화자는 많은 청춘이 그렇듯 현재가 평안치 않고 따라서 미래는 불안하기만 했던 듯하다. 그 어지러웠던 마음이 어둠 속에 죽순처럼 솟았다. 우리는 지금 정갈한 탄생의 순간을 보고 있다. 그 순간의 맑은 전율을 잊지 않는 한, 죽순의 그 마음 곧게 자라나 청청한 대숲 이루리라.
초심의 아름다움, 초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다. 하는 일이 지지부진하고 기쁨이 없다면, 그 일을 시작할 때의 처음 마음, 처음 자세를 되새겨보자. 어린 아기로 돌아가, 서툴더라도 즐겁게 한 걸음 한 걸음, 새로 디뎌보자.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002> dongA.com/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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