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화(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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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1921∼84)황해도 은율 출생
1954년 『현대예술』에 <돌각담> 발표
1957년 전봉건,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발간.
1969년 시집 『십이음계』 출간
1971년 <민간인>으로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1979년 시집 『북치는 소년』 출간
1978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2년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출간
몇 줄 안 되는 글로 이렇게 여운이 끝없는 울림이라니!아마 혼자 사실 터인 할머니는
눈뜨자마자 외양간에 가, 여물통에 여물을 듬뿍 쏟아서 외동 소에게 먹였을 것이다.
당신은 찬 없는 밥을 훌훌 뜨셨을 것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선 할머니와 소는 해질 녘
까지 묵묵히, 때론 논일을 때론 밭일을 했을 것이다.
밀레의 유명한 그림 ‘만종’ 속 농부 부부는 멀리 마을에서부터 들녘으로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고개 숙이고 두 손 모아 기도드리고 있다. 그처럼 경건히, 공손히,
‘묵화’ 속 할머니에게 고개 숙이고 싶다. 할머니와 소의 고되고 죄 없는 삶….
시 속의 할머니에게도 추석이라고 건너와, 싸이의 ‘말춤’을 추며 웃음 드릴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005>
dongA.com/201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