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무신
◇오세영◇
이른 봄 깊은 산사(山寺) 적막한 목탁소리.
산새 홀로 드나드는 반나마 열린 법당(法堂).
눈빛이 파아란 비구니 하나 꿇어앉아 울고 있다.
댓돌 위엔 텅 빈 흰 고무신이 한 켤렌데
어디선가 꽃잎들이 호르르르 날아와서
그중에 홍매화 한 잎이 나비처럼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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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1942~ )전남 영광 출생
1965-6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시집『시간의 뗏목』,『봄은 전쟁처럼』,『문열어라 하늘아』외 다수
학술서『20세기 한국시 연구』,『상상력과 논리』,『우상의 눈물』외 다수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상 문학부문 대상, 시인협회상,
김삿갓문학상, 공초문학상, 녹원문학상, 편운문학상, 불교문학상 수상.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훈
하버드대학에서 한국시 강의할 때 학생들이 시조에 더 쏠렸던 경험 후 시조를 같이 쓰는
시인의 신작이다. 시보다 시조에서 압축미가 도드라지는 것은 당연한 차이. 이 시조도 '흰
고무신' 한 켤레에 응집한 '깊은 산사'의 봄을 정갈하게 보여준다. '산새 홀로 드나드는' 법
당(法堂)에 '꿇어앉아' 우는 '눈빛이 파아란 비구니',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절 마당 너
머로 파르라니 번진다.
꽃들도 마음이 쓰였던가. '흰 고무신' 주위로 '호르르르 날아'와 기울인다. 그때 '나비처럼
앉는' '홍매화 한 잎'! '흰' 고무신에 '홍'매화의 대비가 고적한 절에 한 점 선연한 붉음을
얹는다. 게다가 비구니도, 산새도, 고무신도 홍매화도 다 '하나'라니 정경이 더 아스라하다.
호곡(號哭)으로 세워온 이 나라의 봄날, 절집에서도 우는 여인이 있어 꽃조차 아프다.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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