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 좀 떨었으면
세상은 내 편이었을까
울음으로 짝을 안는
귀뚜라미 명기(鳴器)거나
울음으로 국경을 넘던
흉노족의 명적(鳴鏑)이거나
울음으로 젖 물리던
에밀레종 명동(鳴動)이거나
울음으로 산을 옮기는
둔황의 그 비단 명사(鳴砂)거나
아으 방짜의 방짜 울음 같은
구음(口音) 같은 맥놀이만
하염없이 아스라이 그리다가
다 늦어 방향을 수습하네
바람의 행간을 수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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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1957∼ )경기도 용인 출생
1984년 세종대왕숭모네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 『허공 우물』,『저녁의 뒷모습』,『저물 녘 길을 떠나다』
중앙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등 수상
속눈썹이 길면 눈이 한층 정감 어려 보인다. 혼자 지프를 몰고 호주의 오지를 여행한
여성 화가가 있었다. 어느 늦은 밤, 그녀는 꼬박 한나절 만에 만난 민가를 두드려 음식
을 청했는데 동양인과 말을 나눌 엄두를 못 냈던 그 집 주부, 타조 사진과 캥거루 사진
을 보여주며 어느 쪽을 먹겠느냐고 물었단다. 화가는 캥거루를 택했는데 이유는 타조
눈이 너무 예뻤기 때문. 아마 타조도 속눈썹이 길지? 여자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
남자의 마음도 떨리리.
실력 없어도 ‘속눈썹 좀 떨면’ 존재를 인정받고 편히 사는 세상, 화자는 이제야 세상 돌
아가는 속내를 깨닫고 이만저만 어이없고 섭섭한 게 아니다. 화자라고 떨 속눈썹이 없겠
는가만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단다. 그러면 어떻게 살았느냐? 이 멋들어진 사설시조
(辭說時調)의 중장에 대차고 유장하게 흐르는 사설을 보라.
‘울음으로 짝을 안는 귀뚜라미 명기(鳴器)거나 울음으로 국경을 넘던 흉노족의 명적(鳴
鏑)이거나 울음으로 젖 물리던 에밀레종 명동(鳴動)이거나’…! 울 명(鳴)으로 시작되는
두 글자 명사마다 강세(强勢)가 ‘방짜 중의 방짜’ 징소리처럼, 심벌즈 소리처럼 쟁쟁 울
리지 않는가. “얼쑤!” 추임새가 절로 들어간다. 시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비트(beat)라
는 걸 체감시키는 사설이다.
이렇게 살아왔다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시인의 꿈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그 꿈으로
입은 듯한 손해가 주는 환멸도 크리라. 속눈썹 떨기와 진정성의 대결인가. 종장에 담긴
뜻이 방향을 바꿔 달리 살겠노라는 게 아니기를! 속눈썹 아무나 떠나요. 당신의 힘은 진
정성에 있을레라.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02>
dongA.com/201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