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일 -임강빈-
백목련 자리가 너무 허전하다
누가 찾아올 것 같아
자꾸 밖을 내다본다
우편함에는
공과금 고지서 혼자 누워 있다
이런 날엔 전화벨도 없다
한 점 구름 없이
하늘마저 비어 있다
답답한 이런 날이 또 있으랴
마당 한 구석에 노란 민들레
반갑다고 연신 아는 체한다
그래그래 알았다
오늘은 완전 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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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빈=(1931∼ )충남 공주 출생.
1952년 공주사범대학 국문과 졸업.
195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옴.
1969년 첫시집 『당신의 손』 이후, 『동목(冬木)』
『매듭을 풀며』 『등나무 아래에서』 등의 시집을 간행함.
현재 대전 도마중학교 재직중.
공일(空日)은 휴일, 곧 쉬는 날이다. 전에는 일요일 하루가 공일이었지만 주 5일 근무가
대세인 요즘은 토요일도 공일이다. 젊은 사람들은 일주일에 이틀 공일도 짧게만 느껴질
것이다. 밀린 잠 벌충하랴, 데이트하랴, 혹은 가족에게 봉사하랴, 거기에 더해 정신과 체
력을 충전하고자 바쁜 여가를 보내다 보면 시간이 후딱 갈 것이다.
‘인생은 무료하면 길고 충실하면 짧다’고 독일 시인 실러가 말했다지. 싱겁기도! 하나 마
나 한 말인 만큼 맞는 말씀이다. 누구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싱겁지 않게 가
슴을 치는 말이 떠오른다. ‘하루는 길고 일생은 짧다.’
‘백목련 자리가 너무 허전하다’, 꽃 진 지 하루 이틀 아니련만 ‘백목련 자리’에 유독 가슴
허해지는 화자, ‘누가 찾아올 것 같아/자꾸 밖을 내다본’단다. 평일에도 배달되는 우편물
이라고는 공과금 고지서요, 전화벨을 울리는 건 마케팅 전화이거늘 오늘은 공일, 아무도
화자를 찾지 않는다. ‘한 점 구름 없이/하늘마저 비어 있다’,
화자의 마음 상태는 가문 봄날의 공기처럼 촉촉함과는 거리가 멀다. 화자의 마음을 설렘
과 기대로 그윽이 채워주던 봄의 생기는 꽃들과 함께 지고 여름을 향해 가는 긴긴 낮의
아무 자극 없는, 권태롭고 막막한 공일. ‘답답한 이런 날이 또 있으리’! 누구라도 반갑겠지
만 화자가 정말 애타게 기다리는 건 시심(詩心)이리라.
세상에서 잊힌 듯 외롭고 답답해하는 화자는 ‘마당 한 구석에 노란 민들레’를 보면서 마
음을 가라앉힌다. 홀연히 날아와 홀연히 핀, 홀연히 떠나갈 노란 민들레, 그것이 인생이
거늘. 우리 비자꾸나, 비우자꾸나! ‘오늘은 완전 공일’!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03>
dongA.com/201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