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적 소풍날
꽁보리밥에 양념 친 날된장을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다른 친구들 모두 쌀밥으로 싸왔거니 하고
산모퉁이에 숨어서 점심을 먹었다
이 기억만은 선연한데
그날 그 소풍 간 곳이 어디였는지
그날 어머니는 무슨 색깔의 옷을 입으셨는지
그날 아침밥은 무슨 반찬으로
어느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는지
그날 내가 사자표 가루치약으로
양치질을 했는지 어쨌는지
그날 우리 집 뜨락에
철쭉이 몇 송이나 꽃봉오릴 매달았는지
그날 우리 집 앞을 어떤 자동차가
몇 대나 지나갔는지
그날 신문에 무슨 기사가 실렸었는지
그날 또 어머니가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리셨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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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1942∼)대구상업고등학교 졸업.
1987년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 등단.
1989년 첫시집 '발해기행' 출간. 1996년 시집 '요하의 달' 출간.
1998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2006년 시집 '축몽사자' 출간
시를 옮긴 ‘권투선수 정복수’는 상희구의 ‘대구’ 시리즈 시집 중 한 권으로 ‘대구의 사람’
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지방도시 대구를 무대로 195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시인은
하나하나 되살린다. 대구사람 상희구가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육정(肉情)에 가까운 사랑
을 담은 사투리로 불러내는 건 단순한 향수로서가 아니다. 차라리 그는 외치고 싶을 테
다. ‘응답하지 마라, 1950년대!’ 그 시절의 서민 생활은 오늘에서 보자면 빈민급이다.
하물며 서민도 못 되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겠는가. 미친 사람, 오갈 데 없는 사람, 굶주리
는 사람이 흔해터진 그 시대의 특색은 한마디로 ‘지지리도 가난함’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 이름을 날린 사람, 선택받은 사람도 있어, 그리고 그들이 바닥의 사람들을 저버리
지 않아 시절을 넘기는 데 디딤이 됐을 테다. 생각느니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지리고 비
리고 누린 가난의 냄새여! 비애의 ‘쩐’내여! 진저리치면서도 한 가닥 시인의 마음을 당기
는 끈은 선린(善(린,인))의 추억이다.
‘대구’ 시편으로는 드물게도 사투리 없이 쓰인 시다. 시 속의 ‘그날’은 소풍 당일을 포함한
그 시절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있다. 그런데 그
세계의 잣대는 어른 사회의 잣대와 비슷하다. 어린이는 철이 없어 외부 환경에 더 민감하
게 영향을 받는다. 어떤 어린이에게 소풍은 가난을 새삼 뼈저린 외로움으로 느끼게 하는
행사가 될 수 있다. 학교 급식시간이면 매번 이런 고통을 느낄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05>
dongA.com/2015-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