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뻘겋게 미쳐나
제주 하늘 떠돌다
시커멓게
멍든
혼들아!
50년도 더 지나
고작
눈물 무덤들
지어냈으니
와서
보아라!
무자년 그 처참한 삶과 죽음들
나라는 어디에 있지?
백의민족은?
우리가 창조해낸
삶, 아!
그 빈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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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성=(1938∼ )제주에서 출생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했다.
시집 <제주바다>,<내 손금에서 자라나는 무지개>,
<바닷가에서 보낸 한 철>,<허공>,<백 년 동안 내리는 눈>
현재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직을 맡고 있다
이 시를 옮긴 시집 ‘허물어진 집’은 금빛 햇살 물고 한가로이 파도치는 아름다운 제주 바다,
수심(水深) 깊이에서 자욱이 피어오르는 제주도 사람의 처연한 역사로 독자 가슴을 벤다.
‘제주어(제주 토박이말)가 사라져간다./제주도인도 사라져간다./사라지기 전에 이 언어로/
제주 4.3사태 등에 대한 몇 편의 시를 썼다.’(‘시인의 말’에서) 사람들아, ‘와서/보아라!’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에 서린 애통함과 의분(義憤)이 언제까지고 가슴을 쑤시는 ‘무자년 그
처참한 삶과 죽음들’. 4·3사태 유적지 ‘무등이왓’, 정확히는 ‘무등이왓 터’에서 새삼 무너지
는 시인의 억장이다.
‘왓’은 ‘밭’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무등이왓’에 대한 사진과 글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
있다. 1948년 11월에 ‘시뻘겋게 미쳐나’, 불을 내서 주민을 몰살시키고 폐촌을 만들었다지.
‘댓잎 바람 소리/봉분들/빈 무덤들/만들었네 시신들/찾지 못해’, 인터넷 사진 속의 돌담을
뒤덮은 무성한 대나무 숲, 솨솨 흔들리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행복한사람’이라는 블로거가
글을 맺은 말이 가슴에 남는다. ‘먹고살기 힘들다고/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고/잊어버리지
않기를/소홀히 하지 않기를/나는 제주인이니까!’
거칠게 선동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우러나 움직이게 하는 선생의 제주 시편들. 무너지는
억장에서 나오는 여리고 맑은 시어가 가슴에 촉촉이 젖어든다. 가령 ‘할로산과 흐르지 않는
남수각 시내/개떡 같은 초가 마을이/살았어요 검둥개와 조랑말/복숭게낭/돔박낭과 돔박생
이/밥주리와 독수리/머쿠슬낭과 머쿠슬생이’(시 ‘회귀·回歸’에서), 언제까지고 나직나직 이
어질 듯한 이 서럽고 아름다운 옛이야기 가락. 선생의 시집들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13>
dongA.com/201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