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Clayderman의 피아노 연주곡..
앉은뱅이고추밭으로
부는 바람
◆박완호◆
마땅한 찬거리가 없는 저녁 무렵이면 할머니
담장 옆 손바닥만 한 고추밭에 난쟁이처럼 쪼그리고
앉은뱅이고추를 한 바가지나 따시네
매운맛 되게 풍기는,
삼복의 논두렁을 겨우 건너온 할아버지
구부정한 발길이 지게작대기처럼 와 얹히는
초저녁 앉은뱅이고추밭
뙤약볕 아래 종일 시달리느라 축 처진,
막걸리 한 사발에 알딸딸한 할아버지
불그레한 낯빛마냥 얼얼한 바람 놀지면, 할머닌
알맞게 매운 풋고추를 따느라 정신없고
부엌의 가마솥뚜껑은 들썩들썩 입거품을 잔뜩 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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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1965~ )충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내 안의 흔들림』『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아내의 문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등.
시인축구단 ‘글발’ 회원 및 ‘서쪽’ 동인. 김춘수시문학상(2011) 수상.
먹고 사는 일이 하늘이다. 그 하늘 섬기는 게 사람의 첫 번째 도리이자 드높은 진리다.
저녁 무렵 앉은뱅이고추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추를 한 바가지나 따는 할머니, 뙤약볕
아래에서 논일 마치고 돌아와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할아버지. 누가 이들의 삶이
고달프다고 연민을 품을 것인가?
저기 저녁밥 앉힌 가마솥뚜껑은 들썩들썩 입거품을 잔뜩 물었다. 매운 풋고추 된장에
찍어 저녁밥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 밥만이 곧 살맛이다. 이 밥상에 수저 하나 더
얹고 방금 지은 가마솥 밥을 매운 풋고추와 함께 먹고 싶구나!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