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약전(略傳)
◆서정춘◆
내 안의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 밖으로 빚어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 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이는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가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생이 있었다
---------------------------------------------------------------
▶서정춘=(1941~ )전남 순천 출생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1년 박용래문학상, 2007년 유심작품상 수상
-시집 [죽편][물방울은 즐겁다].....
혓바닥뿐인 생이라니! 달팽이의 한 생은 고달팠으리라. 달팽이는 제 뼈를 녹여 만든 누옥
(陋屋) 한 채를 등에 짊어지고 끌며 일생을 보낸다. 등에 얹은 집의 무게는 달팽이가 감당
해야 할 평생의 수고다.
온 뜨락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드난살이하는 처지라도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이 없지 않으
리! 집 없는 설움에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는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내 콧날이 시큰해진
것은 ‘달팽이 약전’이 집 없이 한세상 떠돈 내 ‘아버지 약전’이었던 탓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