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풍경
◆안주철◆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 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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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철=(1975~ )安舟徹강원도 원주에서 출생.
배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구멍가게는 누구나 수시로 드나들게 개방된 공간이다. 눈에 거슬리는 손님을 맞는 스트레스
도 여간 아닐 테다. 이문이 많이 남는 물건을 얼른 사 가는 손님만 있으면 좋으련만, 동네 어
느 집에 집들이라도 온 사람이 드문드문 그럴까, 코흘리개와 모주꾼이나 들락거린다. 종일
가게를 열고 있어도 장사가 별로이니 물건도 변변히 갖춰 놓지 못한다.
그러니 모처럼의 번듯한 손님도 그냥 나가버리고, 악순환이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러온 아이
는 얼른 골라들지 않고 전기 닳게 냉장고 문을 오래도 열고 들여다본다. 사내들은 딸랑 소주
두어 병 사서는 평상에서 우렁우렁 오래도 떠들며 마시고 있다.
살림집에 ‘엄마’가 낸 구멍가게, 밥은 당연히 가게에 딸린 방에서 먹을 터. 코앞에서 펼쳐지
는 단작스러운 장사, 외면할수 없이 드러나는 제 가족의 생활 밑천에 화자는 울컥해서 ‘이
놈 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에 대한 ‘엄마’의 즉각적인 대답은 아들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이놈아, 지금 네 목구멍에
넘어가는 밥이 어디서 난 줄 아느냐!’ 생의 구질구질함에 속이 꽉 막혔을 화자는 외려 후련하
고 정신이 번쩍 났을 테다.
이런 구멍가게가 변두리 옛날 동네에는 아직 남아 있다. 시인은 대한민국의 빈곤을 모르는
첫 세대라는 1970년대생, 빈곤이 한층 싫고 힘들었을 테다. 이 시가 담긴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은 가난한 집에서 1막을 시작한 생은 2막도 3막도 똑같이 지리멸렬 이어지고, 그렇
게 인생이 끝나리라는 비관적 세계관을 유머러스하고 서글프게, 또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독자 여러분께 작별인사를 드려야겠다. 오래도록 지면을 허락해준 동아일보에 감사드린다.
즐겁고 알찬 시간이었다. 여러분도 그러했기를!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45·끝>
dongA.com/201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