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 하녀들에 빠지다
◆서화성◆
햇살마저 살얼음처럼 살벌해진 8월,
공간소극장
외로이 거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그 곳에는 한 남자와 세 여자가 산다
바람마저 죽어버린 그 곳에서
그녀들은 밤마다 하녀들에게 미쳐간다
타들어가는 조명 아래서
끌레르, 당신은 마담이 되어가지만
하녀가 당신인 것을
욕망의 끝에서 식어버린 홍차
홍차를 가져오래도 어서,
그녀들은 새벽이 가기 전에 축배를 든다
뜨겁게 아주 달콤하게
새어나가는 가로등 불빛에서 백짓장처럼
불이 꺼진 무대, 그녀들은
하녀들을 남겨 둔 채 무대에서 사라진다
홍차에 대취한 그날 밤,
그 남자는 하녀들을 좋아했고
그녀들은 그 남자를 사랑했다
----------------------------------------------------------------
▶서화성=(1968~ ) 경남 고성에서 출생
2001년 [시와사상] 신인상에[카메라 앵글에서 ...
가 잡히다]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아버지를 닮았다'.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시작노트〉
장 주네 원작 연극 '하녀들' 공연이 부산 공간소극장에서 30일까지 있었다. 아내는 이 연극
에 출연했다. '하녀들'에서 복종에 길든 주인공들이 자기들만의 연극을 통해 의미 있는 저항
을 해보지만, 현실과 삶에는 아무 영향을 못 준다. 그러나 땀과 열정을 바쳐 '하녀들'을 연습
하고 공연하는 배우들 모습에서 삶의 에너지와 사랑을 뜨겁게 느꼈다.
kookje.co.kr/2015-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