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不二), 서로 기대어
◆이혜선◆
고속도로 달리다가
나무에 기대고 있는 산을 보았다
허공에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배를 타고
청산도 가는 길에
물방울에 기대는 물을 보았다
갈매기 날개에 기대는 하늘을 보았다
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나고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 자라난다
하루해가 기우는 시간
들녘 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 기대는 것을 보았다
그 어깨 위에 하루살이들 내려앉아
깊은 잠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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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1950~ )1981년 월간 『시문학』추천으로 등단. 문학박사
시집 『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저서『문학과 꿈의 변용』『유치환 詩의 效用論的 硏究』외 논문 다수
한국 문인협회 및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 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한국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한국 자유문학상, 선사문학상 수상
모든 것은 다른 것에 몸을 비스듬하게 댄다. 남의 힘과 도움에 의지한다. 모든 것은 다른
것을 믿고 자신을 맡긴다. 가을산에 기댄 나무를 보라. 아득한 수평선 위 하늘에 기댄 갈
매기를 보라. 비옥한 흙에 의지하는 둥근 씨앗을 보라. 엄마의 젖가슴을 물고 잠든 아기
를 보라.
그러나 의지하고 몸을 기댄 것들의 관계는 둘이 아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방적인 관
계가 아니다. 지내는 사이가 매우 친밀하므로 떼어놓을 수도 없다. 둘은 대등하며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 그래서 가을산은 한 그루 나무에 기대고, 수평선 위 하늘은 끼룩거리며
나는 갈매기에게 기대고, 흙은 발아한 씨앗에 기대고, 엄마의 젖가슴은 방긋방긋 잘도 웃
는 아기에게 기댄다. 도움의 손을 서로 빌려가며 사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