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내 친구를 미치도록 짝사랑한
나의 짝사랑이 배 두 상자 보내왔네
그 속에 사연 한 장도 같이 넣어 보내왔네
화들짝 뜯어보니 이것 참 기가 차네
종문아 미안치만 내 보냈단 말은 말고
알 굵은 배 한 상자는 친구에게 부쳐줄래
우와 이거 정말 도분 나 못 살겠네
에라이 연놈들의 볼기라도 치고픈데
알 굵은 배 한 상자를 미쳤다고 부쳐주나
---------------------------------------------------------------
▶이종문=1955년 경북영천 출생
199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저녁밥 찾는 소리),(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 하지 뭐니)등 논저로(고려전기 한문학연구),
(한문 고전의 실증적 탐색),(인각사 삼국유사의 탄생)등
현재 계명대 사범대 교수로 재직중
여기 짝사랑 둘과 배 두 상자로 엮은 이야기가 있다. 이 사랑은 심각하지 않다. 이미 흘러
간 시절의 얘기이다. ‘나’는 친구를 짝사랑하는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세월 흘러 여
자는 제 짝사랑을 못 잊어 배 한 상자를 몰래 보내고 싶은데, 그 여자를 짝사랑했던 ‘나’는
끝내 배알이 뒤틀린다.
제 짝사랑에게 배 한 상자를 부쳐달라고 부탁하는 여자에게 “우와 이거 정말 도분 나 못
살겠네” 한다. 제 짝사랑을 짓밟은 그 여자에게 복수를 하는데, 그 방식이 참 치사하다. 제
짝사랑에게 부쳐달라는 “알 굵은 배 한 상자”를 중간에서 그냥 꿀꺽해버린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