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 없이 아름답다
◆김주대◆
빗방울 하나가
차 앞유리에 와서 몸을 내려놓고
속도를 마감한다
심장을 유리에 대고 납작하게 떨다가
충격에서 벗어난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목탁 같은 눈망울로
차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어떠한 사족(蛇足)도 없이 미끄러져, 문득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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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1965~ )1989년《민중시》, 1991년《창작과 비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도화동 사십계단』(청사, 1990)),『그대가
정말 이별을 원한다면 이토록 오래 수화기를 붙들고 울 리가 없다』
(하늘땅, 1991), 『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시작, 2007), 『나쁜,
사랑을 하다』(답게, 2009), 『그리움의 넓이』(창비 2012)가 있음.
가차 없이 사라지는 것은 가차 없이 아름답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모란이 지던 초여
름 밤, 짧게 지나가는 비, 백거이의 어떤 시구, 초가을의 아침 이슬, 거룻배, 중국 여행의 끝,
무지개, 첫사랑… 따위가 그렇다. 차 앞유리에서 제 속도를 마감하는 빗방울도 가차 없이
사라지는 것의 목록에 든다.
빗방울은 꿈틀거리다가 “목탁 같은 눈망울”로 차 안을 들여다보고, 이윽고 미끄러져 사라진
다. 이 미미한 것의 사라짐을 놓치지 않은 시인이라니! 덧없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빗방울 한
점은 젊음, 세월, 생명, 사랑이나 다를 바 없다. 찰나의 광휘를 남기고 사라짐으로써 애틋해
지는 것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9.10